
1977년에 방영된 작품이 한국에 들어오기까지 정확히 41년이 걸렸습니다. 세계명작극장 시리즈 중 팬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한 작품이 이렇게 늦게 국내에 소개됐다는 사실이 자료를 찾아보면서 저도 처음엔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림체만 보면 분명히 낯이 익은데, 작품 자체는 완전히 낯선 묘한 경험이었습니다.

세계명작극장 시리즈의 숨겨진 1위, 그 배경
꼬마 너구리 라스칼은 1977년 후지 텔레비전에서 매주 일요일 저녁 방영된 전 52화짜리 애니메이션입니다. 세계명작극장 (닛폰 애니메이션이 세계 문학 작품을 어린이 대상으로 애니화한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으로,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 플랜더스의 개, 빨강머리 앤과 함께 시리즈 최상위권에 드는 작품입니다. 닛폰 애니메이션이 직접 실시한 인기투표에서도 1위를 차지한 바 있습니다(출처: 닛폰 애니메이션 공식 사이트).
원작은 미국 작가 토머스 스털링 노스(1906~1974)가 1963년에 출판한 자전적 소설입니다. 자전적 소설이란 작가 자신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소설 형식을 말하는데, 주인공 이름이 작가 본인과 같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성격이 잘 드러납니다. 위스콘신 주의 시골 마을에서 열한 살 소년이 아기 라쿤을 1년간 키우는 이야기로, 미국 도서관 협회에서 수상했고 1969년에는 디즈니사가 실사영화로도 제작했습니다.
제가 이 작품을 처음 알게 된 건 세계명작극장 시리즈를 통해서였는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하이디나 빨강머리 앤은 국내에서도 이름만 들어도 아는 작품인데, 같은 시리즈에서 일본 내 인기 1위 작품이 한국에서는 2018년에야 처음 방영됐다는 사실이 꽤 충격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제작진 면에서도 눈길을 끄는 지점이 있습니다. 연출 콘티를 기동전사 건담의 감독으로 잘 알려진 토미노 요시유키가 담당했고, 원화(애니메이션에서 핵심 장면의 그림을 직접 그리는 작업)를 미야자키 하야오가 맡았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연출은 배제하고 순수하게 작화에만 집중한 사실상 유일한 작품으로, 두 거장이 가장 많이 협업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제가 그림체에서 왠지 모를 친숙함을 느꼈던 건 이 이유였던 것 같습니다.
- 방영: 1977년 1월 ~ 12월, 후지 텔레비전, 전 52화
- 원작: 토머스 스털링 노스의 1963년 자전적 소설, 미국 도서관 협회 수상작
- 제작 라인업: 연출 콘티 토미노 요시유키, 원화 미야자키 하야오
- 세계명작극장 팬 투표 1위, 라인 스탬프·캐릭터 상품 현재도 출시 중
- 한국 방영: 2018년 대원미디어 수입, 케이블 채널 방영 후 현재 OTT 서비스 없음

귀여운 라쿤이 남긴 생태계 문제와 원작 소설이 당긴 호기심
이 작품을 조사하면서 가장 씁쓸하게 남은 이야기는 따로 있었습니다. 애니메이션이 큰 인기를 끌자 일본에서 라쿤을 반려동물로 수입하는 사례가 급증했습니다. 그런데 라쿤은 귀여운 외모와 달리 집 안을 망가뜨리고 영역표시를 위해 오줌을 싸지르고 성체가 되면 공격성이 높아지는 동물이라, 결국 대부분 야생에 방생되었습니다.
이렇게 무단 방생된 라쿤이 야생화하면서 일본의 기존 생태계를 위협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외래침입종 (원래 서식지가 아닌 곳에 유입되어 토착 생태계를 교란하는 생물)으로서의 피해가 심각해지자, 일본 환경성은 2005년부터 미국 너구리(라쿤)를 특정외래생물종으로 지정했습니다. 여기서 특정외래생물종이란 생태계·농업·인체에 피해를 줄 수 있어 수입·방생·사육이 법으로 제한되는 종을 의미합니다(출처: 일본 환경성 외래생물 정보). 현재 일본에서는 동물원과 일부 라쿤 카페에서만 볼 수 있으며, 라쿤 카페마저도 동물복지 문제로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TV에서 다뤄진 적이 있습니다. 어미에게 버려진 아기 너구리를 7개월간 집에서 기르던 할머니가 사춘기에 접어든 너구리가 공격적으로 변하고 집 안 곳곳에 영역표시를 하면서 결국 야생 복귀 훈련 보호소에 입소시킨 에피소드가 방영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이 에피소드를 떠올리며 자료를 읽었을 때, 라스칼이 1년 만에 숲으로 돌아간다는 원작 소설의 결말이 사실 단순한 이별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1963년에 쓰인 원작이 "야생동물은 야생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담고 있었던 셈입니다.
이번에 자료를 찾아보면서 애니메이션보다 원작 소설 자체에 더 강하게 끌렸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관계,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 제1차 세계대전 중 징집된 형에 대한 기억이 아기 라쿤과의 1년이라는 시간 위에 겹쳐지는 구성이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 소설을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생겼습니다. 조만간 도서관에서 직접 대출해서 읽어볼 생각입니다.
작품을 둘러싼 시각도 사람마다 다른 것 같습니다. 일본에서는 이 애니메이션이 라쿤 수입 붐을 일으킨 원인 제공자라고 보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그 책임을 작품 자체에 돌리기보다는 귀엽다는 이유만으로 야생동물을 반려동물로 삼으려 했던 당시의 문화적 인식 문제로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작품 안에서 라스칼은 결국 숲으로 돌아가니까요.

자주 묻는 질문
Q. 꼬마 너구리 라스칼은 지금 어디서 볼 수 있나요?
A. 2018년 대원미디어가 수입해 애니원, 애니박스 등 케이블 채널에서 방영됐지만, 이후 라프텔에서도 내려간 상태입니다. 현재는 국내 OTT나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정식으로 볼 수 있는 경로가 없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판권 문제가 원인으로 보인다는 의견도 있는데, 정확한 사정은 공식 발표가 없어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Q. 미야자키 하야오가 라스칼 작화에 참여했다는 게 사실인가요?
A. 사실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원화 작업을 담당했고, 연출 콘티는 토미노 요시유키가 맡았습니다. 미야자키가 연출 없이 작화에만 집중한 사실상 유일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으며, 두 사람이 가장 많이 협업한 애니메이션이기도 합니다. 그림체에서 익숙한 느낌이 드는 분이 많은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Q. 라쿤을 지금도 일본에서 반려동물로 키울 수 있나요?
A. 2005년부터 특정외래생물종으로 지정되어 수입과 반려 사육이 모두 금지됐습니다. 동물원이나 일부 라쿤 카페에서만 볼 수 있으며, 라쿤 카페도 동물복지 문제로 비판을 받고 있어 접근 가능한 경로가 줄고 있습니다. 귀엽다는 인상과 달리 실제로는 키우기 매우 까다로운 야생동물이라는 점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Q. 원작 소설 라스칼은 국내에서 구할 수 있나요?
A. 번역본이 출판된 적이 있어 도서관 소장 여부를 검색해보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법입니다. 절판 상태일 가능성이 있어 서점 구입보다는 공공도서관 대출이나 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 서비스 이용을 먼저 확인해보시는 게 낫습니다. 저도 조만간 도서관에서 직접 찾아볼 계획입니다.
https://youtu.be/1aIocTWnvqs?si=VDlGkIfP71r27TAe
결론
세계명작극장 시리즈를 찾아보지 않았다면 이 작품을 아예 몰랐을 것입니다. 제가 직접 자료를 찾아봤는데, 일본에서 40년 넘게 사랑받은 작품이 국내에서는 방영 한 번으로 끝난 채 OTT에서도 사라진 현실이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인지도가 낮아서라는 분석도 있는데, 저는 오히려 접근 경로가 없으니 인지도가 쌓일 기회 자체가 없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정리하면, 이 작품의 가치는 미야자키·토미노 콤비라는 제작 이력에만 있지 않습니다. 원작 자전적 소설이 담고 있는 상실과 성장의 이야기, 그리고 라쿤 방생 붐이라는 예상치 못한 사회적 파장까지, 한 편의 애니메이션이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와 연결돼 있다는 게 흥미롭습니다. 원작 소설을 도서관에서 먼저 찾아보고, 기회가 된다면 애니메이션 본편도 구해서 볼 생각입니다.
참고: https://namu.wiki/w/%EA%BC%AC%EB%A7%88%20%EB%84%88%EA%B5%AC%EB%A6%AC%20%EB%9D%BC%EC%8A%A4%EC%B9%BC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