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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운명은 내가 던지는 질문이다 (간신 박중헌, 기타누락자, 육아관)

by thevivera 2026. 6. 19.

솔직히 12회를 보면서 처음엔 '이 드라마가 이렇게까지 갈 줄은 몰랐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간신 박중헌이 고려시대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악연의 중심에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단순한 복수극이 아니라 인간의 선택과 운명이라는 훨씬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드라마라는 게 느껴졌습니다. 그 질문은 드라마 속 인물들만이 아니라, 화면 밖의 저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간신 박중헌, 고려에서 현재까지 이어진 악연의 실체

12회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장면은 단연 박중헌(김병철 분)의 정체가 완전히 드러나는 대목이었습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도 "설마 이 인물이 저승사자의 기타누락자 명부에 올라가 있을 줄이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타누락자 명부란 저승의 정상적인 처리 절차에서 빠져나간 존재들을 기록한 목록으로, 쉽게 말해 죽음과 환생의 순환에서 이탈한 영혼들을 뜻합니다. 그 명부의 두 번째 인물이 박중헌이라는 사실은 단순한 악인 서사를 넘어서, 이 드라마가 인과응보(因果應報)라는 개념을 얼마나 집요하게 파고드는지 보여줍니다.

인과응보란 자신이 행한 선악의 행위에 따라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결과가 뒤따른다는 원리입니다. 박중헌은 고려시대 왕(김민재 분)과 장군 김신(공유 분) 사이를 이간질했고, 그 결과 왕비(김소현 분)까지 목숨을 잃게 만들었습니다. 수백 년이 흐른 현재에도 그는 은탁과 써니 주변에 나타나 위협을 키우고 있으니, 드라마는 악의 인과가 한 생애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는 셈입니다.

드라마의 서사 구조를 분석하는 시각 중에는 "박중헌이라는 캐릭터가 너무 전형적인 악인으로 소비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느꼈습니다. 하지만 12회를 보고 나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박중헌은 단순히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장치가 아니라, 김신이 자신의 존재 이유를 다시 묻게 만드는 거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공유가 본인의 몸에 박혀 있는 검의 효용 가치를 비로소 알게 되는 것도 이 맥락에서 읽힙니다. 검이란 단순한 저주의 도구가 아니라, 악을 끊어내기 위한 도구였을 수 있다는 재해석이 12회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12회 핵심 전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저승사자(이동욱 분)가 써니에게 슬픈 기억을 잊으라 권유하며 관계를 정리하려는 태도를 보임
  • 박중헌이 은탁·써니 주변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며 위협 수위를 높임
  • 도깨비 김신과 저승사자가 박중헌의 계획을 감지하고 대응에 나섬
  • 기타누락자 명부 첫 번째 인물이 지은탁, 두 번째가 박중헌으로 밝혀짐
  • 김신이 자신의 몸에 박힌 검의 진정한 의미를 인식하기 시작함

기타누락자 명부가 던지는 질문, 운명은 설계된 것인가

저승사자의 기타누락자 명부에 지은탁(김고은 분)이 첫 번째로 올라가 있다는 사실은, 이 드라마에서 가장 서늘한 설정 중 하나입니다. 제 경험상 드라마를 많이 봤지만 이렇게 정교하게 죽음과 운명의 시스템을 구조화한 작품은 흔치 않았습니다.

서사 이론에서 말하는 플롯 아이러니(plot irony)라는 개념이 여기서 작동합니다. 플롯 아이러니란 독자나 시청자가 인물보다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있는 상태에서 발생하는 극적 긴장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은탁이 기타누락자 명부의 첫 번째 인물임을 알고 있지만, 은탁 본인은 모릅니다. 이 간극이 매 장면마다 긴장감을 높입니다.

라포르(rapport), 즉 인물 간의 신뢰와 감정적 유대가 이 드라마의 핵심 동력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실제로 저도 그 의견에 동의하는 편입니다. 저승사자가 써니에게 기억을 잊으라고 권유하는 장면은 표면적으로는 이별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상대방을 위해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는 라포르의 역설이 담겨 있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놓아준다는 이 구조는 많은 분들이 공감하는 지점일 것입니다.

한편 박중헌의 위협이 구체화될수록, 드라마는 "운명이 설계된 것이라면 그 설계에 맞서는 선택은 의미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계속 던집니다. 유덕화(육성재 분)를 통해 모습을 드러내는 신의 존재가 "운명은 내가 던지는 질문"이라고 말한다는 점에서, 드라마는 결정론과 자유의지의 경계 어딘가에 일부러 모호하게 서 있습니다. 결정론이란 모든 사건이 이미 정해진 원인에 의해 발생한다는 철학적 입장으로, 자유의지와 정반대 지점에 놓입니다. 이 둘 사이에서 인물들은 선택을 내리고, 그 선택이 운명을 완성시키거나 뒤흔들어 놓습니다.

국내 드라마 서사 연구에서도 판타지 장르가 현실의 인간관계와 선택의 문제를 투영하는 방식이 꾸준히 주목받고 있습니다(출처: 한국방송학회). 도깨비는 그 대표적인 사례로 꼽힐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드라마가 건네는 메시지, 여백을 허락하는 것의 의미

12회를 보고 나서 제가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된 장면은 사실 박중헌의 등장이나 검의 비밀보다, 저승사자가 써니에게 "슬픈 기억은 잊어라"라고 말하는 장면이었습니다.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물러서는 그 선택이 드라마 전체에서 말하고 싶은 것과 닿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정답을 주지 않고 스스로 찾게 하는 것"이 진정한 보호라는 메시지는, 드라마 속 신의 태도에서도, 저승사자의 선택에서도 반복됩니다. 어떤 분들은 이것이 너무 추상적인 위로라고 보기도 합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랬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무언가를 스스로 깨달은 순간과 누군가에게 정답을 받은 순간을 비교해 보면 전자가 훨씬 오래 남는다는 게 사실입니다.

드라마 서사에서 캐릭터 아크(character arc)란 인물이 이야기를 통해 내면적으로 변화하는 곡선을 의미합니다. 은탁의 캐릭터 아크는 '버려진 존재'에서 '스스로 운명의 주체가 되는 존재'로 이어지는데, 그 변화가 설득력을 갖는 이유는 그 과정에서 누구도 대신 답을 내려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힘든 상황에서도 치킨집 아르바이트를 구하고 학업을 이어가며 자신을 증명해 온 은탁의 모습이 그것을 뒷받침합니다.

콘텐츠진흥원의 드라마 서사 분석 자료에 따르면, 시청자가 장기적으로 공감하는 캐릭터는 외부 환경에 의해 구원받는 인물보다 스스로 선택하고 변화하는 인물인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고 합니다(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도깨비가 방영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회자되는 데는 이런 서사적 구조가 한몫하고 있다고 봅니다.

12회는 절정을 향해 달려가는 회차인 만큼, 각 인물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맞이할지에 대한 긴장감이 극에 달합니다. 박중헌이라는 악의 축이 현재까지 살아 숨 쉬고 있고, 기타누락자 명부의 비밀이 은탁과 직결된다는 사실은 13회 이후를 더욱 조마조마하게 기다리게 만듭니다.

드라마 속 신이 "운명은 내가 던지는 질문"이라고 했을 때, 그 말을 듣는 것은 김신과 저승사자만이 아닐 수 있습니다. 화면 앞에 앉아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도 그 질문은 조용히 날아왔고, 저 역시 그 질문 앞에서 잠깐 멈추게 되었습니다. 다음 회차에서 그 질문에 인물들이 어떤 답안을 써 내려갈지, 끝까지 지켜봐야겠습니다.

 

참고: https://tvn.cjenm.com/ko/dokebi/
https://www.kab.or.kr
https://www.kocc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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