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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황금곰상, 가오나시, 지브리)

by thevivera 2026. 6. 23.

애니메이션 한 편이 베를린 국제 영화제 황금곰상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셨나요? 저도 처음엔 그 수상 소식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실사 영화들 사이에서 애니메이션이 당당히 최고상을 받아 갔다는 사실은, 이 작품이 얼마나 특별한 위치에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2001년 개봉 이후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회자되는 작품,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입니다.

황금곰상까지 품에 안긴 애니메이션, 어떻게 가능했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2002년 제52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했습니다. 황금곰상이란 베를린 국제 영화제의 최고 영예에 해당하는 상으로, 경쟁 부문에 출품된 전체 작품 중 최우수작에게 수여됩니다. 애니메이션이 이 상을 받은 것은 당시 기준으로 사실상 전례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것만이 아닙니다. 같은 해 제75회 아카데미상에서는 비영어권 셀 애니메이션 최초로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했습니다. 여기서 셀 애니메이션이란 투명한 셀룰로이드 필름 위에 그림을 그려 완성하는 전통 방식의 애니메이션을 말하는데, 디지털 작업이 주류가 되기 전까지의 애니메이션이 이 방식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제가 처음 이 영화를 본 건 모노노케 히메를 보고 난 직후였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이라는 것 하나만으로 아무 의심 없이 극장을 찾았는데, 그 믿음은 완전히 보상받았습니다. 2016년 BBC가 선정한 21세기 최고의 외국어 영화 목록에서 4위에 올랐고, 2017년 뉴욕 타임스 선정에서는 2위를 차지했습니다(출처: BBC Culture). 서양의 권위 있는 매체들이 이 작품을 상위권에 꼽는다는 점은, 이 영화가 단순한 아시아 지역의 흥행작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합니다.

가오나시가 말해주는 것, 인간의 고독과 욕망

가오나시는 이 영화에서 가장 상징적인 캐릭터라고 생각합니다. 검은 그림자에 가면만 얹은 형태로, 평소에는 "아"나 "에" 같은 소리밖에 내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 캐릭터를 처음 봤을 때부터 왜인지 모르게 무섭기보다는 외로워 보인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가오나시는 캐릭터 아키타입(Archetype)의 관점에서 볼 때 매우 흥미롭습니다. 아키타입이란 인류가 보편적으로 공유하는 무의식적 원형 캐릭터 유형을 의미하는 개념으로, 심리학자 칼 융이 제시한 이론입니다. 가오나시는 타인의 욕망을 흡수하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는, 정체성 없는 존재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지브리 스튜디오가 공개한 바에 따르면, 이 영화에는 1980년대 일본 경제 침체기의 탐욕을 비판하는 시각이 담겨 있습니다. 부모님이 신들의 음식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먹어 돼지로 변한다는 설정은 그 은유를 매우 직접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가오나시가 온천장 직원들에게 금을 뿌리며 환심을 사려는 장면도 같은 맥락에서 읽힙니다. 돈이면 다 된다는 사고방식을 가진 이들은 결국 가오나시에게 먹혀버리고, 치히로만이 그 금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히사이시 조의 음악, 그리고 영화를 구성하는 서사 문법

이 영화를 이야기하면서 히사이시 조의 음악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저는 영화가 끝나고도 한동안 극장 의자에서 일어나지 못했는데, 음악이 감정을 붙잡고 놓아주질 않았기 때문입니다.

히사이시 조는 1984년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부터 미야자키 하야오와 함께해 온 음악 감독으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그의 일곱 번째 지브리 작품입니다. 영화 음악에서 라이트모티프(Leitmotif)라는 기법이 있는데, 이는 특정 인물이나 감정, 상황을 상징하는 짧은 음악적 동기를 반복·변주하여 서사에 깊이를 더하는 방식입니다. 히사이시 조는 이 기법을 탁월하게 구사하여 치히로의 성장과 하쿠와의 관계를 음악만으로도 따라갈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연출 방식은 보여주지 않고 느끼게 만드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치히로가 고하쿠강에서 신발을 떠내려 보내는 장면은 실제로 미야자키 하야오, 프로듀서 스즈키 도시오, 그리고 지인의 딸 오쿠다 치아키가 함께 산책하다 겪은 경험에서 나온 장면입니다. 실제 경험이 씨앗이 된 장면이기에 그 감정이 화면에서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름을 빼앗긴다는 것, 치히로의 성장 서사가 던지는 질문

여러분은 자신의 이름이 사라진다면 어떨 것 같으신가요? 영화에서 유바바는 치히로에게서 이름을 빼앗고 '센'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여기서 네이밍 파워(Naming Power), 즉 이름을 지배하는 자가 존재 자체를 지배한다는 개념이 이 영화의 핵심 서사 장치로 작동합니다.

하쿠 역시 자신의 본명 '니기하야미 고하쿠누시'를 잊고 유바바에게 지배당하고 있었습니다. 치히로가 그 이름을 기억해냄으로써 하쿠는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었습니다. 이름을 기억한다는 것은 곧 그 존재를 인정하고 관계를 회복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가 세계적으로 공감을 얻은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 보편적인 정체성 탐색의 이야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아이에서 어른으로 넘어가는 성장의 과정에서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지 않는 것, 그것이 치히로가 온천장에서 결국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일본 국내에서만 2,35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고 304억 엔의 흥행 수익을 기록했다는 사실은(출처: 스튜디오 지브리 공식 사이트), 이 메시지가 단순한 아동 애니메이션의 범위를 훨씬 넘어섰음을 보여줍니다.

 

이 영화에서 제가 인상 깊게 본 포인트들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치히로의 성장 서사: 의존적인 아이에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로 변화하는 과정
  • 가오나시의 상징성: 정체성 없이 타인의 욕망을 흡수하는 현대인의 고독을 표현
  • 이름과 기억의 테마: 이름을 잃지 않는 것이 곧 자신을 지키는 일이라는 메시지
  • 히사이시 조의 음악: 라이트모티프 기법으로 서사를 음악으로 직조한 방식

명작은 시간이 지나도 명작입니다. 개봉한 지 20년이 훌쩍 넘었는데도 이 영화가 여전히 회자되는 이유는, 단순히 예쁜 그림이나 흥미로운 설정 때문이 아닙니다. 인간의 탐욕, 정체성, 성장, 그리고 관계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기 때문입니다.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지금 바로 보시기를 권하고, 이미 보셨다면 한 번 더 보시면 처음 보셨을 때와는 또 다른 장면들이 눈에 들어올 것입니다.

참고: https://ko.wikipedia.org/wiki/%EC%84%BC%EA%B3%BC_%EC%B9%98%ED%9E%88%EB%A1%9C%EC%9D%98_%ED%96%89%EB%B0%A9%EB%B6%88%EB%AA%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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